얼마전 아름다운 교회에 임직식을 다녀왔다. 그 임직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에도 감동이 있었지만 임직식때 일꾼들이 선서하는 모습에 매우 당황스러울정도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안수집사들을 호명하는 데서부터 그들이 서약할 때 대답이 그 어느 군대에 정예병들보다도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고 절도 있는 모습에 꼭 군대 연병장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니 기절할뻔한 것은 그 많은 권사님들도 서약을 하며 아름다운 한복의 자태와는 어울리지는 않는듯 너무나 우렁찬 소리에 수많은 참여자들을 놀라게 했다. 너무나 잘 훈련되어진 군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임직을 받을때 만이 아니라 그 충성의 서약이 계속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목사님의 모습이 더 훌륭하게 보여졌다.저절로 할렐루야가 나온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무리 반복해서 불러보아도 언제나 마음에 감동이 되는 말이다. 엄동설한의 모진 추위를 몰아내는듯한 용기에 힘이 솟는것 같았다. 이번 겨울은 유난이도 추운듯 눈도 많이 오고 경제적으로도 힘이 들어 마음마저 얼어 붙었던 추운 겨울에 들려오는 꽃내음과도 같았다. 곧 추운 겨울도 지나고 봄의 따뜻한 계절이 찾아오고 땅속 깊이 잠자던 생명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듯 생명의 소생의 계절 특별히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에 시작되는 때에 우리도 주님처럼 더욱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용기 넘치는 군사들이 되었으면한다. 초라하게 막대기를 들고 나오는 다윗의 모습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같은 우리의 모습이 작아보여도 칼보다 창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나가는 용기 있는 군사로 우리가 먼저 거듭나기 위해서는 더욱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겠다. 우주만물과 삼라만상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섭리대로 순종하는 자연의 이치를 우리는 보면서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생들만이 주의 만드신 섭리를 거스리는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속에는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불신하는 혼란과 혼돈 의 삶을 살아간다. 만물의 운행은 오로지 창조주의 섭리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창조이후로 그대의 그 모습을 가지고 존재한다. 만약에 우주공간을 따라 공전하는 행성이 자기의 경로를 이탈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 결과는 말할 수 없는 재앙으로 온 생명체가 파멸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가치는 만드신 조물주의 마음에 합당한 대로 존재하여야한다. 나의 삶에 만족이 아니고 창조주의 마음에 합당한 존재로서 살아갈 때 그 여호와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풍성한 가운데 함께 살아가며 은혜를 누리는 삶의 모습은 언제나 할렐루야인 것이다. 주의 뜻 가운데 순종하는 사람의 삶이란 전능하시고 온전하신 우리의 주인 되시는 그분,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따라 누리는 풍성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이 아니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도록 은혜로 주어진 자녀의 권세로 하늘과 땅과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자.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받은 성도들이여 겨울의 추위에 얼어붙었던 대지위에 따스한 햇살이 비취는 시간이 길어지고 얼어붙은 단단한 대지가 아주 서서히 녹아내리자 죽은 것처럼 보이던 대지위의 부드러움 속에 생명들이 기지개를 펴듯이 연하고 새파란 생명을 부드럽게 드러내 보이며 조석으로 차가운 기온 밖으로 그 얼굴을 살며시 내 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도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엡5:14)고 외치는 성경의 말씀을 들으며 언제나 매우 작은 은혜의 감동을 머금고 그 은혜와 감동위에서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계3:2)는 말씀같이 이제부터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새로운 삶의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며 주의 뜻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기 위하여 양육을 받고 강도 높은 훈련으로 제자가 되고 군사가 되어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려와 안디옥에서 주의 말씀으로 가르쳐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를 받게 한것처럼 목소리만 큰자가 아닌 정말 삶에 순종하는 청지기 되어 더 큰 부흥 주역들로 쓰임받는 축복을 누리면 참으로 좋겠다.